서론
한국의 전통 간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 세대의 기억이자 정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바쁜 생활 속에서 많은 전통 간식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조청의 점성이 주던 따뜻함, 과줄의 바삭한 달콤함은 이제 일부 장터나 농가 체험장에서만 겨우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의 맛은 한 번 사라지면 복원하기 어렵다.
이 글은 ‘잊혀진 간식’을 다시 일상으로 되살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청과 과줄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의 리듬과 계절의 향기를 담은 문화유산이다.
이 글을 통해 그 전통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고 있는지를 천천히 따라가 보자.

1️⃣ 조청 – 자연의 시간으로 끓여낸 달콤함
조청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당(糖) 식품이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농가에서 직접 조청을 만들었다.
쌀이나 보리, 고구마 같은 곡물을 엿기름과 함께 삭혀서 오랜 시간 천천히 졸여내는 과정은 시간과 정성이 결합된 예술 행위였다.
과학적으로 보면 조청은 효소 분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화된 천연 감미료다.
하지만 조청의 진짜 매력은 그 ‘느림’에 있다.
조청을 만드는 사람은 끓는 솥 앞에서 수십 번의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불 조절을 잘못하면 탈 수 있고, 너무 약하면 점성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조청은 ‘불의 예술’이라 불린다.
이 과정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조청을 젓는 동안 “마음의 불”도 다스렸다.
2️⃣ 과줄 – 손끝에서 피어나는 전통의 결
과줄은 조청으로 묶은 튀밥이나 곡물 과자다.
표면은 바삭하지만 안에는 부드럽고 달콤한 향이 퍼진다.
예전 결혼식이나 잔치에서는 과줄이 빠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히 ‘간식’이 아니라 복과 번영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과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조청을 일정한 온도로 끓여 점성을 맞추고,
그 안에 튀밥이나 깨, 땅콩 등을 고루 섞은 뒤 일정한 압력으로 눌러 식혀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감각으로 이루어진다.
조청의 농도, 날씨의 습도, 손의 온도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완성된 과줄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의 매개체였다.
명절이면 이웃끼리 과줄을 나누며 안부를 전했고, 손자에게는 “이건 네 할머니 손맛이야”라는 말이 따라왔다.
그 기억이 바로 과줄의 진짜 맛이다.
3️⃣ 사라진 이유 – 산업화의 그림자 속에서
조청과 과줄이 점점 사라진 이유는 단순히 ‘입맛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1970년대 이후 공장식 당류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설탕, 물엿, 시럽 등이 대량 생산되었다.
조청의 느린 제조 과정은 효율성에서 밀렸고,
과줄의 손작업은 ‘비용이 많이 드는 낡은 공정’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소비자들이 점차 인스턴트 간식에 익숙해지면서
‘전통 간식 = 옛날 음식’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결국 많은 장인들이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작업을 멈췄고,
조청 솥과 과줄 틀은 마을 창고 속에 조용히 잠들었다.
4️⃣ 복원 프로젝트의 시작 – 다시 솥에 불을 붙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세대와 지역 단체들이
잊혀진 전통 간식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북 정읍과 경북 안동, 그리고 전남 구례 등지에서는
‘조청 복원 워크숍’, ‘과줄 만들기 체험학교’ 같은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한 청년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조청은 단순히 단맛이 아니라, 손맛과 기다림의 기록이에요.”
이 말은 전통 간식 복원의 본질을 잘 설명한다.
조청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시간을 되찾는 과정이다.
또한, 일부 청년 창업자들은 과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현미 과줄바’, ‘조청 그래놀라’ 같은 상품으로 출시했다.
이들은 전통의 기술을 유지하면서도
디자인과 포장, 스토리텔링을 통해 새로운 소비층을 만들고 있다.
5️⃣ 느림의 미학 – 전통 제조의 과학과 철학
조청을 끓이는 과정은 과학적으로 보면 효소 반응의 연속이다.
하지만 장인의 손에서는 그것이 예술이 된다.
조청이 끓는 소리는 마치 숨 쉬는 듯하고,
끓는 냄비 위로 올라오는 거품은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한 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조청은 온도계로만 끓이는 게 아니에요. 마음의 온도가 더 중요해요.”
이 말은 단순한 감성의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조청의 점성은 온도보다 불의 간격과 저어주는 리듬에 더 크게 좌우된다.
그 리듬은 사람의 감정과 닮아 있다.
불이 너무 세면 금세 타고, 너무 약하면 맛이 흐리다.
삶도 그렇듯, 조청은 ‘적당한 불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6️⃣ 전통 간식 복원의 의미 – 문화와 정체성의 회복
조청과 과줄을 복원하는 일은 단순히 음식의 부활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기억과 감정의 복원이다.
전통 간식은 단맛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속에는 가족의 시간, 마을의 공동체,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가 담겨 있다.
최근 들어 젊은 세대가 ‘슬로 푸드’와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면서
조청과 과줄은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었다.
조청은 첨가물이 없고 자연 효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건강식으로도 주목받고 있으며,
과줄은 ‘한국식 천연 에너지바’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7️⃣ 지역 사회의 움직임 – 전통을 산업으로
전북 완주, 전남 곡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 간식 복원’을 중심으로 한 로컬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간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파는 산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완주의 ‘조청마을 프로젝트’는
마을 주민이 직접 조청을 만들고, 관광객에게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그 결과, 농촌의 소득이 증가하고
젊은 세대가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처럼 전통 간식 복원은 단순한 향수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 경제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8️⃣ 조청과 과줄이 전하는 메시지
조청의 단맛은 설탕보다 깊고, 과줄의 바삭함은 단순한 식감이 아니다.
그 속에는 ‘기다림의 가치’와 ‘손의 온도’가 담겨 있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조청과 과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달콤한 것은 기다림 속에서만 온전히 익는다.”
그 말은 단순히 음식의 철학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9️⃣ 마무리 – 사라진 맛을 되살리는 일은 기억을 되찾는 일
전통 간식을 복원하는 일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손맛, 마을의 향기, 그리고 한국인의 정서를 다시 만난다.
조청의 묵직한 달콤함과 과줄의 바삭한 결 속에는
한국인의 ‘정(情)’과 ‘끈기’가 녹아 있다.
이제는 그 전통이 더 이상 박물관 속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식탁 위에 다시 오르길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복원이며,
전통의 맛이 미래와 연결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