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새로운 풍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 남는 건 결국 ‘사람’이다. 나는 화려한 명소보다, 작고 조용한 소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표정과 말을 오래 기억한다. 어느 작은 역 앞 카페의 주인, 골목 시장의 할머니, 바다 냄새가 묻은 어부의 손길. 이 글은 그런 사람들과의 짧지만 진한 만남을 기록한 여행기이다. 관광지가 아닌, 사람의 온기를 찾아 떠난 여정 속에서 나는 여행의 본질을 다시 배웠다.

🚉 1. 바다 냄새가 머무는 역, 주문진
나는 강릉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간 주문진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도에도 잘 표시되지 않은 작은 간이역이 있었다.
낡은 간판과 푸른 파도 냄새가 뒤섞인 플랫폼에서 나는 한 카페를 발견했다.
카페 주인은 40대 후반의 남자였고, 그는 “서울살이 15년을 접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도시는 빠르지만, 사람의 표정은 점점 느려진다”고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파도를 바라봤다.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시간의 속도가 그곳에는 있었다.
그는 손님이 없을 때마다 해변을 걸으며 ‘오늘은 얼마나 웃었는지’ 세어본다고 했다.
그의 하루가 여행보다 더 여행 같았다.

🧺 2. 느린 걸음의 시장, 전주 남부시장
며칠 뒤 나는 전주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낮에는 조용하지만 밤이 되면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는 곳이다.
나는 김밥을 파는 할머니에게서 저녁을 샀다.
그녀는 김밥을 말며 “요즘은 사진만 찍고 가는 손님이 많다”고 웃었다.
나는 김밥 한 줄을 먹으며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사람들이 음식의 맛보다 ‘보여주기’에 익숙해진 시대에,
그녀는 여전히 정성으로 손맛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시장의 소음을 음악처럼 들었다.
그 안에는 삶의 리듬과 온기가 섞여 있었다.

🌊 3. 바람이 머무는 마을, 통영의 뒷골목
마지막 여정은 통영이었다.
많은 여행자가 중앙시장과 케이블카를 찾지만,
나는 현지 주민이 알려준 좁은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오래된 집과
문 앞에 앉아 손뜨개를 하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여기까지 오다니 참 부지런하네”라며 웃었다.
그녀는 이 골목에서 평생을 살았고, 바람이 바뀌면 계절이 온다는 걸 몸으로 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바다 냄새 속에 서 있었다.
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깊이가 있었다.
🌤️ 4. 여행의 본질을 다시 묻다
나는 이 여행에서 어떤 명소도 ‘리뷰용’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
대신 사람의 표정, 웃음소리, 손의 움직임 같은 작은 장면들을 기억에 새겼다.
그 기억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지속된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존재다.
관광지가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나는 진짜 여행을 했다.
🌾 마무리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나는 소도시를 돌며 그 문장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유명한 풍경 대신 낯선 사람의 따뜻한 눈빛을 만났고,
그 눈빛이 내 여행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았다.